청소년기의 자해 및 자살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공중보건 및 정신건강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 시기의 자살 행동은 성인과는 구별되는 발달적·정서적 특성을 반영한다(Nock et al., 2008). 특히 청소년의 자살 행동은 충동성, 정서조절의 어려움, 또래 및 가족 관계에서의 스트레스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Marrero et al., 2023). 이러한 위험요인은 단일 요인보다는 상호작용적으로 작용하며, 정서적 취약성이 높은 청소년일수록 자해 및 자살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Carvalho et al., 2023).
정서조절 곤란은 청소년의 비자살적 자해와 자살 사고 및 시도 모두와 유의미한 관련성을 가지는 핵심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Washburn et al., 2012). 정서조절이란 개인이 경험하는 감정의 강도와 지속 시간을 상황에 맞게 조절하고, 이를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사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Gross, 2015). 청소년기에는 이러한 정서조절 체계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강렬한 정서를 인지적으로 처리하기보다 행동으로 표출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다(Kennedy & Brausch, 2024). 정서조절이 어려운 청소년은 강렬한 부정적 정서를 경험할 때 이를 효과적으로 조절하거나 언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 결과 자해나 자살 행동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Linehan, 1993).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청소년의 자살 위기는 외현적으로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조기 발견과 개입이 지연되는 문제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Nock et al., 2008).
청소년기 자해 및 자살 위기는 초기 애착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Bowlby, 1969; Ainsworth et al., 1978). 특히 주 양육자로부터의 조건적 수용이나 정서적 안전기지(secure base)의 부재는 청소년이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의 고통을 언어화하지 못하고 자해와 같은 신체적 행동화를 통해 정서를 조절하게 만드는 취약 요인이 된다(Linehan, 1993; Schore, 2001). 본 사례와 같이 성취 중심의 자기 가치 구조를 가진 내담자에게 대학 입시와 같은 발달적 위기는 애착 표상의 재갈등화를 유발하며, 외부의 인정을 통해 자기 가치를 유지하려는 욕구가 좌절될 때 극단적 선택의 위험성을 높이는 기제로 작용한다(Blatt, 2004; Mikulincer & Shaver, 2007).
자해 및 자살 행동은 단순한 파괴적 행동이 아니라, 내적 긴장을 경감하고 견디기 어려운 정서를 조절하려는 시도로 기능하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유도하려는 관계적 신호로도 이해될 수 있다(Nock, 2010; Linehan, 1993). 따라서 자살 위기 개입에서는 행동 자체를 통제하거나 억제하기보다, 그 행동이 수행하는 정서조절 및 관계적 기능을 이해하고, 보다 적응적인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는 청소년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주요 환경으로서 자살 위험을 조기에 인식하고 개입할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자살 위기개입은 여러 현실적 한계를 지닌다(Cho et al., 2018). 제한된 상담 시간과 인력,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 경험 부족, 그리고 언어 중심 상담 방식의 제약은 고위험 청소년의 정서적 안정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Bae et al., 2013). 특히 급성 자살 위기 상태에 있는 청소년은 침묵, 회피, 정서 폭발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언어적 접근 자체가 제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Washburn et al., 2012).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는 자살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비언어적·표현적 치료 접근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Malchiodi, 2012; Tunnecliff & O'Brien, 2004). 비언어적 접근은 언어화 이전의 정서 경험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하며, 정서조절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을 지닌다(Marrero et al., 2023). 모래놀이치료는 보호된 공간 안에서 내담자가 자신의 내적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도록 돕는 치료 방법으로, 학교 상담실뿐 아니라 지역사회 기반의 상담·치료 기관에서도 정서 표현과 안정화를 촉진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Tunnecliff & O'Brien, 2004).
선행연구들은 청소년 자해·자살 행동의 핵심 위험 요인으로 정서조절 곤란과 대인관계 스트레스를 지적하면서,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계된 자살 예방·개입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Bae et al., 2013; Cho et al., 2018). 또한 비언어적·상징적 접근으로서 모래놀이치료가 고위험 청소년의 정서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하지만(Ahn & Kwak, 2022; Kwak, 2025), 실제 자살 위기 상황에서, 학교의 의뢰를 통해 심리상담 임상장면에서 모래놀이치료가 진행된 구체적인 사례 연구는 여전히 드물다. 특히 급성 자살 위기 국면에서 모래놀이치료가 어떤 위기개입적 기능을 수행하며, 위험 행동이 상징적 표현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탐색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자해 및 자살시도를 경험한 여고생이 학교의 의뢰를 통해 심리상담 임상장면에서 모래놀이치료를 받은 단일사례를 위기개입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연구 질문을 설정하였다. 첫째, 자해 및 자살시도를 경험한 여고생의 모래놀이치료 과정에서 자살 위기와 관련된 상징과 장면은 어떻게 나타나고 변화하는가? 둘째, 모래놀이치료 전·후 내담자의 정서 상태와 자해·자살 사고 및 행동에는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는가? 셋째, 학교 기반 선별 후 심리상담 임상장면에서 이루어지는 위기개입 맥락에서 모래놀이치료는 어떠한 임상적 의미와 한계를 갖는가?
따라서 본 연구는 급성 자살 위기 상황에서 모래놀이치료가 내담자의 정서적 붕괴를 어떻게 담지하고, 죽음 충동이 상징적 표현으로 전환되면서 심리적 안정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탐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학교 기반 선별 후 심리상담 임상장면에서 이루어지는 위기개입 맥락에서, 고위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모래놀이치료의 임상적 활용 가능성과 실천적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론적 배경
청소년기의 자해 및 자살 행동은 충동성, 미성숙한 정서조절 능력, 대인관계 스트레스와 밀접하게 연관된다(Nock et al., 2008; Marrero et al., 2023). 특히 이 시기의 자살 행동은 계획된 죽음 의도라기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를 즉각적으로 경감시키려는 시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Washburn et al., 2012). 정서조절 곤란은 청소년의 비자살적 자해와 자살 사고·시도 모두와 유의한 관련을 보이는 핵심 위험 요인이다(Washburn et al., 2012; Kennedy & Brausch, 2024). 정서조절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은 강렬한 부정적 정서를 언어로 정리하고 표현하기보다, 자해나 자살 행동과 같은 극단적 행동으로 표출할 가능성이 높다(Linehan, 1993). 이때 자해 및 자살 행동은 내적 긴장을 단기적으로 완화하는 정서조절 전략이자, 주변의 관심과 반응을 유도하는 관계적 신호로 기능하기도 한다(Nock, 2010). 강한 불안·공허감·분노 등은 종종 언어 이전 수준에서 경험되며, 상담 장면에서는 침묵, 회피, 단편적 진술로 나타난다(Nock et al., 2008). 이러한 특성은 위기 상황에서 언어 중심 개입만으로는 정서 안정화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며, 정서를 보다 원초적인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비언어적·상징적 접근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Bae et al., 2013; Cho et al., 2018).
위기개입 관점에서의 치료는 통찰이나 성격 변화보다는 우선적으로 내담자의 안전 확보와 정서적 안정화를 목표로 한다(Tunnecliff & O'Brien, 2004). 특히 급성 자살 위기 상황에서는 내담자의 충동을 설득이나 논리로 통제하려 하기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정서를 안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치료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적인 개입 요소로 강조된다(Washburn et al., 2012). 다시 말해, 위기개입의 중요한 과제는 위험 행동을 단순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수행하던 정서조절 기능을 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Linehan, 1993). 모래놀이치료는 언어적 표현이 제한된 내담자에게 상징적 매체를 통해 내적 경험을 외현화할 수 있도록 돕는 심리치료 방법으로, 치료 장면 자체가 강렬한 정서를 담지(containment)하는 기능을 수행한다(Kalff, 1980). 모래상자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내담자는 파괴적 충동이나 혼란스러운 감정을 직접적인 행동화가 아닌 상징적 장면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위기 상황에서 자해 및 자살 행동의 대체 경로로 작동할 수 있다(Roesler, 2019). Kalff는 모래상자가 내담자에게 자유롭고 보호된 공간(free and protected space)을 제공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Winnicott(1971)가 말한 “보호적 환경(holding environment)”과 유사하게 내담자의 정서를 담지하고 지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모래상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상징적 표현은, 자해 및 자살 행동이 담당하던 정서조절 기능을 보다 안전한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로 이해될 수 있다.
위기개입 관점에서 보면, 모래놀이치료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자해·자살 위기 청소년에게 유용한 매체가 될 수 있다. 첫째, 언어적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도 현재의 정서 상태와 관계 경험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 침묵이나 회피가 두드러지는 청소년에게도 접근성이 높다(Tunnecliff & O'Brien, 2004). 둘째, 자살 사고나 죽음 충동과 같이 직접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주제는 동물, 집, 길, 섬, 바다와 같은 상징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이는 위험 내용을 다루면서도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게 해 준다(Roesler, 2019). 셋째, 반복되는 상자 구성과 상징의 변화를 통해, 내담자의 정서조절 양상과 대처 전략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추적할 수 있다(Ahn & Kwak, 2022; Kwak, 2025).
국내에서도 Ahn과 Kwak(2022), Kwak(2025)의 연구는 학교 기반 선별을 거쳐 심리상담 임상장면으로 연계된 고위험 청소년에게 모래놀이치료를 적용하여, 불안과 충동성 감소, 정서 표현의 확장, 죽음 충동의 상징적 전환과 자아 통합 촉진 등의 변화를 보고하였다. 이러한 선행연구들은 모래놀이치료가 고위험 청소년에게 단순한 표현 기법을 넘어, 급성 위기 상황에서 정서적 붕괴를 완충하고 자살 행동을 예방하는 위기개입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자해 및 자살시도를 경험한 여고생의 모래놀이치료 사례를 위기개입의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상징적 표현이 위기 완화와 심리적 안정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죽음 충동의 상징적 전환’은 Kalff(1980)의 분석심리학적 관점과 Linehan(1993)의 정서조절 관점을 통합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자살 충동이라는 가공되지 않은 강력한 에너지가 모래상자라는 ‘자유롭고 보호된 공간’안에서 구체적인 사물이나 장면(예: 커튼줄의 재현, 쥐의 감시 등)으로 외현화됨으로써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상징은 단순히 내면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파괴적 에너지를 안전한 상징물로 옮겨 담는 ‘충동의 대체’기능과, 위험한 행동화를 상징적 서사 안에서 처리하게 돕는 ‘행동의 상징화’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내담자의 정서적 붕괴를 완충한다.
연구방법
본 연구는 자살성 행동 및 자해 위험이 보고된 고3 여학생에게 개별 모래놀이치료가 개입되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변화와 상징적 변환 과정을 심층적으로 탐색하기 위한 단일사례연구(single-case study)이다(Yin, 2018; Stake, 1995). 단일사례연구는 고위험 청소년처럼 표본 확보가 어렵고, 맥락 의존적인 임상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적합한 설계로, 개별 사례의 전개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질적·양적 자료를 통합하여 해석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해석 편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치료 과정에서 산출된 정량 및 정성 자료를 함께 사용하는 다원적 자료 기반(triangulation) 접근을 적용하였다(Patton, 1999). 즉, 객관검사 점수, 투사적 검사(SCT, K-HTP), 회기별 모래놀이 작품 및 치료자 기술노트, 담임교사·보호자 상담기록 등 서로 다른 자료원을 상호 대조하여, 해석의 일관성과 임상적 타당성을 점검하였다.
연구 대상자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으로, 자살시도 및 자해 위험이 보고되어 학교상담실(Wee Class)에 고위험 학생으로 의뢰된 이후, 학교의 의뢰를 통해 심리상담 임상장면(지역 상담센터)으로 의뢰되었다. 의뢰 당시 내담자는 학업(대학입시) 및 가족·대인관계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에서 정서적 고통이 심화되었고, 자살시도와 반복된 자해를 보이는 등 안전 확보가 필요한 임상적 상태로 판단되었다.
본 사례는 상담 시작 전 보호자(모)와 내담자에게 연구 목적과 사례 활용 계획을 충분히 설명하고 서면 동의를 얻은 후 진행되었다. 전체 개입은 초기상담, 언어상담, 모래놀이치료, 사전·사후 심리평가, 추수상담으로 구성되었다.
사전 심리평가(문장완성검사, 그림검사, 객관검사)는 2022년 10월 6일에 실시하였다. 모래놀이치료는 주 1회, 회기당 약 50분으로 총 22회기가 진행되었다. 치료 종결 직전인 2023년 2월 15일에 사후 심리평가를 실시하였으며, 이는 종결 1회기 전에 시행한 종결 전(post) 평가로, 치료 종료 직전의 상태를 반영한다. 치료 종결 이후에는 정서적 안정과 변화 유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 또는 대면 방식의 추수상담을 3회 실시하였다.
본 연구는 치료 전·후 변화를 다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정량 및 정성 자료를 함께 수집하였다.
정량 자료로는 우울(CES-DC), 특성불안(TAIC), 자살사고(SIQ-JR), 자해행동(지난 1개월 기준 NSSI 에피소드 수)을 사용하였으며, 모든 정량 척도는 사전(2022.10.06)과 사후(2023.02.15)에 동일 절차로 시행하였다.
정성 자료로는 문장완성검사(SCT), 그림검사(K-HTP, K-KFD), 담임교사 및 보호자 상담기록, 초기 언어상담 내용, 회기별 모래작품 사진, 치료자 기술노트 등을 수집하였다. SCT와 그림검사는 투사기법의 타당도 논쟁을 고려하여(Lilienfeld et al., 2000; Lin et al., 2022), 진단적 도구가 아닌 사례 이해를 보완하는 질적 자료로 제한하였다(Holaday et al., 2000).
우울: Center for Epidemiologic Studies Depression Scale for Children (CES-DC). CES-DC는 아동·청소년의 우울 증상을 평가하는 20문항 자기보고 척도이다(Weissman et al., 1980).
특성불안: Trait Anxiety Inventory for Children (TAIC). 특성불안: 상태-특성 불안 척도(State-Trait Anxiety Inventory for Children, STAIC) 중 특성불안 척도(TAIC)를 사용하였다. 본 척도는 Spielberger(1983)가 개발하였으며, 아동 및 청소년의 일반적인 불안 성향을 측정하는 20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살사고: Suicidal Ideation Questionnaire–Junior (SIQ-JR). SIQ-JR는 청소년의 자살사고 빈도와 강도를 평가하는 자기보고 척도이다(Lee et al, 2004).
자해행동: NSSI 에피소드 수. 지난 1개월 동안 발생한 비자살적 자해(NSSI) 에피소드 수를 기록하였다(Lloyd, E. E., 1997).
치료 과정과 사례 해석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자는 사례 진행 동안 정기적인 수퍼비전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한국학교공공상담 모래놀이치료 지도감독자로부터 월 1회 정기 수퍼비전을 받았으며, 수퍼비전에서는 (1) 치료적 틀의 유지, (2) 위험 신호의 변화와 안전확보 조치의 적절성, (3) 회기별 상징 주제의 흐름과 치료 전개를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위험 신호 관찰 시 즉시 수퍼바이저와 상의하여 대응을 조정하였다.
본 연구는 사례 해석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해 모래놀이치료 및 위기개입 분야의 전문가인 국내외 수퍼바이저 3인(Okada, Kwak, Ahn)으로부터 총 4회(2022.11.20, 11.30, 2023.02.10, 02.16)에 걸쳐 공식적인 지도감독을 받았다. 수퍼바이저들은 연구자가 간과할 수 있는 내담자의 강박적 통제 욕구와 무의식적 공격성을 상징적으로 읽어내도록 도왔으며, 특히 위험 신호 관찰 시 즉각적인 대응 조정을 자문함으로써 임상적 타당성을 점검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전문가 교차 검증은 연구자의 주관적 해석 편향을 제어하고, 다원적 자료를 통합적으로 해석하는 질적 연구의 신뢰도를 높이는 결정적 기제가 되었다
수집된 자료는 (1) 사전·사후 정량 점수 변화(부록 표3), (2) SCT 및 K-HTP의 질적 특징, (3) 회기별 모래작품과 치료자 기술노트에서 도출되는 핵심 주제와 변화 양상을 통합하여 분석하였다. 회기별 모래상자 작품과 요약표(부록 표1), 사진 자료(부록 자료1)는 초기–중기–후기 세 단계로 구분하여 상징의 반복과 변화를 추적하는 질적 분석의 주요 근거로 활용하였다.
자료 해석의 타당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회기 기록, 검사 자료, 작품 사진 등 서로 다른 자료원을 상호 대조하는 삼각검증을 실시하였으며, 주요 해석은 정기 수퍼비전에서 위험 신호 변화와 임상적 타당성의 관점에서 재검토하였다(Patton, 1999).
질적 자료 분석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본 연구는 반복 주제 분석 방식(Recurring Theme Analysis)을 적용하여 '고립–전환–연결'의 핵심 테마를 도출하였다. 투사검사인 K-HTP와 K-KFD의 해석은 Buck(1948)과 Hammer(1958)가 제시한 표준화된 구조적·내용적 지표를 준거로 활용하였으며, SCT는 Holaday 등(2000)의 분류 지침에 따라 자아개념과 대인관계 영역을 분석하였다. 분석 과정에서는 회기별 기록과 검사 자료를 상호 대조하는 삼각검증(Triangulation)을 실시하여 해석의 일관성을 확보하였고, 도출된 질적 주제들은 수퍼비전 과정을 통해 임상적 타당성을 재검토받았다.
사례 개요
본 사례는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 자살성 행동 및 자해 위험으로 인해 학교상담실(WeeClass)에 고위험 학생으로 보고된 뒤, 학교의 의뢰를 통해 심리상담 임상장면으로 연계된 경우이다. 의뢰 당시 내담자는 대학입시와 관련된 학업 부담, 가족 및 대인관계에서의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에서 정서적 고통이 심화되어 있었고, 짧은 기간 동안 두 차례의 자살시도와 반복적인 자해를 보이는 등 안전 확보가 시급한 임상적 상태로 판단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된 모래놀이치료 과정에서 관찰된 위험 신호, 정서조절 양상, 관계적 대응의 변화를 중심으로 사례를 기술한다.
의뢰 당시 내담자의 핵심 문제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 기초하여 정리하였다. 첫째, 자살사고와 자해 등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요인이 존재하여, 안전확보가 최우선 임상 과제로 판단되었다. 둘째, 학업 및 대인·가족 스트레스 상황에서 정서조절이 급격히 붕괴되며, 자해가 강렬한 정서를 단기적으로 완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등 위험행동의 유지 기제가 관찰되었다. 셋째, 정서의 언어화와 도움 요청이 제한되어 위기 신호가 내면화·축적되는 양상이 나타나, 기능손상과 긴급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넷째, 의뢰 정보와 학교 기록, 초기 면담, 사전심리평가(문장·그림·객관검사)에서 유사한 위험 신호와 주제가 반복 확인되는 등, 다원적 자료에서 수렴된 근거가 뒷받침되었다.
회기 기록을 종합하면, 의뢰 당시 내담자의 핵심 문제는 다음 세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자살사고가 반복되며 위기 상황에서 충동적 대처 양상이 나타났고, 자해행동이 정서적 고통을 단기적으로 완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위기 최고조 시기에 “줄”을 이용한 자살계획이 직접적으로 언어화되었고, 이후 9회기에서는 커튼줄 사건이 재진술 되면서, 충동적 행동화 대신 상징적 재현의 형태로 죽음 충동이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둘째, 부정적 정서의 언어화와 도움 요청이 제한되어 위기 신호가 내면화·축적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치료 초기 1·2회기에서 내담자는 자신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고립된 마을·숲속 집 등 ‘통제 가능한 고립 공간’을 모래상자 안에 구성하며 상징적으로 위기 상태를 드러냈다.
셋째, 관계적 스트레스 상황에서 회피와 고립이 강화되며 정서적 안전감이 취약해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특히 2회기에서 외부 세계는 위험하지만 집 안에 머물면 안전하다고 강조하는 장면은, 대인·외부 환경을 위협적으로 지각할수록 고립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시사한다.
본 연구에서 사례 분석의 틀로 활용한 '위기관리 4축 모델(안전확보–위험 점검–개별화된 치료–효과 유지)'은 실제 개입 과정에서 적용된 학교 위기 대응 지침과 임상적 판단을 연구자가 사후적으로 체계화한 분석 틀이다. 이는 기존의 위기개입 이론인 Roberts(2005)의 7단계 위기개입 모델이나 국내 학교 위기대응 매뉴얼이 강조하는 ‘즉각적 안전 확보’와 ‘지지 체계 가동’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되, 비언어적·상징적 개입인 모래놀이치료가 고위기 국면에서 어떻게 임상적으로 통합되어 운영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임상적 재구성의 성격을 갖는다. 즉, 본 모델은 보편적 위기개입 프로토콜이라는 외적 구조(Structure)와 모래놀이치료의 심층적 상징화 과정이라는 내적 역동(Dynamics)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본 사례는 고위험 청소년 사례로서, 실제 개입 과정에서는 학교 위기 대응 지침과 임상적 판단에 따라 안전확보, 위험 점검, 치료적 개입, 사후관리의 흐름을 중심으로 위기개입이 진행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실제 운영 과정을 토대로, 사후적으로 위기관리 4축(안전확보–위험 점검–개별화된 치료적 접근–효과 유지)이라는 분석 틀을 구성하여 사례를 정리하였다. 이 4축은 이후 소개된 학교 기반 자살 중재 문헌과 국내 학교 위기 대응 안내서에서 제시하는 원칙과도 대체로 맥락을 같이 한다. 다만 치료 장면 자체에서는 Kalff(1980)가 제시한 모래놀이치료의 핵심 원칙, 즉 내담자가 상징을 통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롭고 보호된 공간(free and protected space)’을 유지하는 것을 우선하였다. 위기관리 4축은 치료 장면을 통제하기 위한 틀이라기보다, 학교·가정·연계 체계에서 안전과 위험을 구조화하여 확보함으로써, 모래놀이치료 장면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지지하는 외적 운영 틀로 기능하였다.
구체적으로, 첫째 축인 안전 확보는 위기 신호가 확인되는 즉시 내담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안전계획 수립, 보호자 및 학교와의 협력 체계 가동, 치명적 수단 접근 감소 등의 조치를 포함하였다. 둘째 축인 위험 점검은 위험 수준의 변동을 전제로 위기 신호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필요 시 대응 강도를 조정하며, 전문기관·응급체계 연계 기준을 적용하는 과정이다. 셋째 축인 개별화된 치료적 접근에서는, 고위기 국면에서 정서 경험의 언어화가 제한되고 관계적 안전감이 취약한 특성을 고려하여, 내담자가 상징적·비언어적 방식으로 정서 경험을 표현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모래놀이치 료의 ‘자유롭고 보호된 공간’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넷째 축인 효과 유지는 종결 전후의 변화를 유지하기 위해 추수상담과 지지 체계 점검을 포함하여 재발 위험을 낮추는 사후관리 단계로 운영되었다.
이처럼 위기관리 4축은 외적 안전과 구조를 마련함으로써, 모래상자 안에서의 비지시적·비판단적 치료 과정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고위험 청소년 사례에서 모래놀이치료가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조건을 뒷받침하였다.
치료 과정
모래놀이치료는 총 22회기로 진행되었으며, 초기(1–5회기), 중기(6–15회기), 후기 (16–22회기)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에는 고립·경계·안전의 상징이 중심이었고, 중기에는 자살 위기와 관련된 긴장이 표면화되면서 상징과 이야기 속에서 재구성되었다. 후기로 갈수록 생활세계(학교, 졸업, 자취 등)와의 연결이 강화되고, 돌봄–회복–전환의 흐름 속에서 중심과 자기상이 정리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초기 단계에서 내담자는 고통을 직접적으로 언어화하기보다, 모래상자 안에 고립된 마을, 울타리, 숲속 집 등 ‘경계가 분명한 공간’을 구성하며 자아를 보호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첫 작품에서는 원형 배치와 울타리, 남대문 등이 등장하며, “밖은 위험하고 안은 안전한” 구조가 형성되었고, 치료자는 내담자의 자아가 아직 흔들리는 상태에서 보호된 틀을 필요로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회기에서도 교실, 보건실, 도서관처럼 학교 장면이 등장하지만, 긴장과 피로가 함께 언급되었고, 힘들 때 도서관·보건실 같은 공간을 “머물 수 있는 안전한 자리”로 사용하는 양상이 드러났다. 전반적으로 초기 단계는 자아 보호를 위한 경계 형성, 고립을 통한 안전 유지, 생활 장면 속 안전 지점 탐색이라는 특징으로 요약된다.
이론적 분석 (자아 경계 변화):초기 단계의 ‘안전한 고립’ 상징은 외부 세계(특히 성취를 요구하는 모성 대상)를 위협적으로 지각하는 내담자가 자신의 취약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구축한 ‘경직되고 폐쇄적인 자아 경계’를 의미한다. 이는 정서적 안전기지의 부재 상황에서 자아 붕괴를 막기 위한 필연적인 방어 기제이며, 차갑고 딱딱한 돌 상징은 감정 둔마를 통해 고통을 차단하려는 내담자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다.
중기 단계에서는 자살 위기와 관련된 분위기가 전면으로 떠오른 뒤, 그 경험이 상징과 서사로 다시 놓이는 과정이 나타났다. 6회기 무렵에는 침입자(쥐), 감시탑, 감시하는 동물 등 감시·침입·통제의 상징이 두드러지며 “소중한 것을 지키느라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긴장과 버티기가 강조되었고, 이 시기는 실제로 자살사고와 계획이 상담 장면에서 직접 언어화된 시기와도 겹친다. 이후 회기들에서는 놀이공원과 모래시계, 어린아이와 동물 등이 등장하면서 정조가 조금씩 달라지고, 시간을 되돌리거나 늘리는 모래시계 상징을 통해 정서가 곧바로 행동화되지 않고 상징 안에 머무르는 여지가 생기기 시작한다. 중기 후반에는 집과 음식, 집 주변의 위협, 이동을 준비하는 집과 배, 가족 저녁 식사 장면 등 일상과 불안이 공존하는 구성이 나타나고, 성장과 삶의 시간축, 대학 진학과 자취 등 분리·이동 주제를 서사적으로 다루며 미래 사건을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두고 다루는 모습이 관찰된다. 요컨대 중기 단계는 위기 분위기의 표면화와 상징적 전환의 시작, 생활·미래 주제의 확장을 통해 자해·자살 행동이 상징 장면으로 점차 옮겨가는 전환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론적 분석 (애착 재조직화):중기 단계에서 나타난 감시와 침입의 역동은 억압되었던 죽음 충동과 무의식적 혼란이 표면화되는 과정이다. 여기서 ‘줄(자살 수단)’에 대한 언급이 상징(쥐)과 서사(배 제작)로 옮겨가는 과정은‘애착 표상의 재조직화’를 시사한다. 즉, 파괴적 에너지가 상징적 공간에 담지(Containment)되면서, 죽음이라는 영구적 단절 대신 ‘이동’과 ‘준비’라는 연속적인 삶의 서사로 정서적 에너지가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후기 단계에서 내담자의 모래상자는 현실 생활세계와의 연결이 강화되면서 돌봄–회복–전환의 흐름이 뚜렷해졌다. 16–17회기에는 사고가 많던 차도가 공원으로 재구성되고, 소아과 병원에서의 퇴원과 예방접종 장면이 나타나 위험과 보호가 한 장면 안에 함께 놓이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18–19회기에는 마른 모래에 물을 더해 젖은 모래를 만들고, 배를 타고 육지를 향해 가는 서사가 등장하여, 말라 있던 내면에 정서적 ‘수분’이 차오르고 막막함을 견디며 이동하는 정서의 움직임이 드러났다. 20–22회기에는 졸업식과 입학, 아파트 단지와 원룸, 골목의 고양이들처럼 현실 전환과 적응을 상징하는 장면이 구체화되었고, 중앙의 나무와 자유롭게 움직이는 고양이 상징을 통해 자기표상이 보다 유연하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요컨대 후기 단계는 초기의 고립된 섬·숲·사막에서 벗어나 사람과 관계 맺는 공간으로 이동하며, 학교·가족·미래(대학)와의 연결 속에서 정서적 안정과 현실 적응을 모색하는 시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론적 분석 (자기(Self) 중심성의 회복 또는 중심화 (Centering)):후기 단계에서 고립된 ‘섬’이 공동체적 공간인 ‘아파트’와 ‘공원’으로 변화한 것은, 타인을 위협적 존재로만 보던 단계에서 벗어나 관계 맺기를 수용하는‘자기대상 표상의 통합’을 의미한다. 특히 사후 K-HTP에서 나타난 내부가 채워진 나무(참나무)는 내담자의 내면에 ‘구조화된 내적 자원’과 ‘안전기지’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지표이다. 초기의 고립된 버드나무에서 생명력 있는 고양이와 뿌리 깊은 나무로 변화한 자기표상은, 자아 통합(Ego Integration)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치료 효과(사전–사후 평가 결과)
치료 효과는 사전(2022.10.06)과 사후(2023.02.15)에 실시한 심리평가를 통해 확인하였다. 사후 평가는 치료 종결 1회기 전에 시행된 종결 전(post) 평가로, 치료 종료 직전의 상태를 반영한다. 단일사례연구의 특성을 고려하여, 인과를 단정하기보다는 사전–사후 변화의 방향과 크기, 그리고 객관검사·투사검사·회기 관찰에서 나타난 변화의 수렴 정도를 중심으로 해석하였다.
부록 표3에 제시된 바와 같이, 사전–사후 비교에서 우울, 특성불안, 자살사고, 자해행동은 모두 감소 방향을 보였다.
CES-DC(우울): 표준점수 75점 → 63점 (감소)
TAIC(특성불안): 표준점수 70점 → 69점 (경미한 감소)
SIQ-JR(자살사고): 표준점수 69점 → 63점 (감소)
수퍼비전 에피소드 수(최근 1개월): 6회 → 0회 (자해행동 소멸)
우울과 자살사고는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감소를 보였고, 최근 1개월 기준 비자살적 자해는 사후 평가 시점에 보고되지 않아,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자해 행동이 중단된 상태로 평가되었다. 특성불안은 소폭 감소에 그쳤으나, 전반적 정서 긴장은 일정 부분 완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전 SCT와 K-HTP에서는 정서적 고립감, 자기비난, 관계적 긴장, 외부 세계에 대한 경계와 안전감의 취약성이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집 그림은 바다 위 섬에 고립된 집으로 나타났고, 나무는 외롭게 서 있는 버드나무로 그려져, “현재의 안정은 있으나 장기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는 상태”와 고립된 자기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사후 검사에서는 집이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위치하고, 창문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자기상이 등장하는 등,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적 공간으로의 이동이 관찰되었다. 나무 그림 역시 내부가 비어 있던 버드나무에서, 나무 기둥 안에 주방·공부방·도서관이 채워진 “거주 가능한 자기 공간”으로 변화하여, 내부 자원의 증가와 관계로의 확장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동적 가족화에서는 가족의 가장자리에서 작게 그려졌던 자기상이, 사후에는 가족의 중앙에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가족 체계 안에서 자기 자리를 회복해 가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투사검사의 사전·사후 변화를 표준 지표에 근거해 분석한 결과, 내담자의 심리 구조적 성숙이 확인되었다. 사전 검사에서 나타난 '바다 위 섬의 고립된 집'과 '비어 있는 버드나무'는 자아의 위축과 정서적 무력감을 시사했으나, 사후 검사에서는 '아파트 단지 내 중앙 배치'와 '내부가 채워진 거주 가능한 나무'로 변화하며 내적 자원의 확장과 현실 적응력의 회복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투사검사의 긍정적 변화는 정량적 수치인 우울 및 자살사고 점수 감소와 동일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약물치료 병행 및 환경적 변화(입시 종료 등)와 같은 외생 변인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므로, 모래놀이치료의 상징적 전환이 내담자의 정서 안정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정리하면, 객관검사에서는 우울과 자살사고, 자해행동의 감소가 관찰되었고, SCT와 K-HTP에서는 고립·경계 중심의 표현이 완화되면서 관계와 생활세계로의 연결이 증가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이는 모래놀이치료 과정에서 초기의 고립된 섬·숲·사막 장면에서, 후기의 아파트 단지, 공원, 골목, 졸업과 입학 이야기로 이동하는 상징 변화와도 방향을 같이 한다. 따라서 본 사례에서는 정량 자료, 투사적 자료, 회기 전개가 모두 “정서적 안정화, 자해·자살행동 감소, 생활세계로의 재연결”이라는 동일한 변화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논의
본 사례에서 내담자는 학업 및 대인관계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황에서 정서조절이 급격히 붕괴될 때 자해와 자살시도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자살사고와 계획은 “줄”을 이용한 구체적 장면으로 언어화되었으며, 자해는 극심한 긴장을 단기적으로 완화하는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청소년의 정서조절 곤란이 비자살적 자해 및 자살 사고·시도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선행 연구와 부합한다(Washburn et al., 2012; Kennedy & Brausch, 2024). 이러한 내담자의 반응은 정서적 취약성이 높은 청소년일수록 정서조절 곤란을 매개로 하여 자해 및 자살 사고를 경험할 위험이 커진다는 최근의 연구 보고(Carvalho et al., 2023)와 궤를 같이한다. 내담자는 초기 발달 과정에서 형성된 취약한 정서 체계를 지니고 있었으며, 대학 입시라는 강력한 외부 스트레스원이 가해졌을 때 이를 완충할 정서조절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정서적 붕괴가 자해 및 자살시도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외현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자해·자살 행동이 견디기 어려운 정서를 조절하는 동시에 타인의 반응을 유도하는 관계적 신호로 기능할 수 있다는 이론적 설명과도 연결된다(Nock, 2010; Linehan, 1993).
초기 회기에서 내담자는 고통을 직접 언어화하기보다 고립된 마을·섬·숲과 같은 상징을 반복적으로 구성하였고, “혼자 있어야 안전하다”는 표현을 통해 관계적 철수를 정당화하였다. 이는 강렬한 정서가 언어 이전 수준에서 경험되며, 상담 장면에서는 침묵·회피·단편적 진술로 나타난다는 보고(Nock et al., 2008)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특성은 위기 상황에서 언어 중심 개입만으로는 정서 안정화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하며, 상징과 장면을 매개로 한 비언어적 접근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Bae et al., 2013; Cho et al., 2018).
본 사례에서 모래놀이치료는 자살 위기 상황을 직접 차단하는 기술이라기보다, 행동으로 표출되던 정서를 상징과 장면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담지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특히 상징은 단절된 이미지들의 병치가 아니라, 앞선 회기의 장면이 다음 회기의 서사를 생성하는 인과적 흐름 속에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치료적 의미를 가진다.
초기(1~5회기)에는 고립된 섬과 숲, 폐쇄된 공간 구성이 반복되며 정서적 고립과 관계적 철수가 전면화되었다. 6회기에서 등장한 트릭스터적 쥐와 감시 구조는 고착된 정서를 흔들며 자살 사고가 상담 장면 안에서 처음 명확히 드러난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9회기에서 구성된 ‘재봉틀로 배를 만드는 상’은 고립된 섬을 떠나기 위한 무의식적 준비 단계로 이해된다. 즉, 이동 이전에 이동 수단을 제작하는 상징적 준비가 선행되었다는 점에서 변화의 잠재적 의지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18회기에서 ‘마른 모래에 물을 더해 젖은 모래를 만든 행위’는 상징적 전환의 핵심 기전이었다. 건조하고 차가운 촉감으로 반복되던 초기 경험과 달리, 모래를 적시는 행위는 정서적 생명력의 회복을 상징한다. 이러한 정서 에너지의 확충이 선행되었기에, 19회기에서 거친 파도를 견디며 육지를 향해 이동하는 항해 장면이 가능해졌다. 즉, 준비(배 제작) → 정서 에너지 회복(물의 도입) → 이동(항해)이라는 연속적 흐름 속에서 상징은 생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자해·자살 행동이 담당하던 정서조절 기능은 점차 모래상자 안의 상징적 표현으로 대체되었으며, 행동화는 상징화로 이동하였다.
내담자의 애착 변화는 단순한 관계 개선의 결과가 아니라, 치료 장면 안에서 모성 대상에 대한 감각적·정서적 경험이 재구성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초기 회기에서 모래를 “차갑고 까끌까끌하다”고 반복적으로 묘사한 것은 모성 대상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의 감각적 투사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7회기에서 모래를 적극적으로 만지며 중앙으로 모으는 행위는 모성 상징을 회피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대상을 재배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현실 장면에서도 모의 상담 동행, 사과 시도, 식물 선물 등의 미세한 상호작용 변화가 나타났으며, 치료자는 이를 평가하거나 중재하기보다 내담자의 정서 경험을 충분히 언어화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개입하였다.
21회기에서 모의 사과를 수용하고 분리를 준비하는 장면은 회피 → 접촉 시도 → 감정 통합 → 수용과 분리로 이어지는 점진적 재조직 과정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후 동적 가족화(K-KFD)에서 내담자가 가족의 가장자리에서 중앙으로 이동한 변화와도 일치한다.
투사검사 변화는 이러한 심리적 이동을 구조적으로 보여준다. 사전 K-HTP의 ‘섬에 고립된 집’은 초기 자아 상태를 반영하였으나, 사후 검사에서 ‘아파트 단지 내 2층 집’으로 재구성된 것은 공동체적 공간 속에서 자신을 위치시키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사전의 ‘비어 있는 버드나무’가 사후에 ‘내부가 채워진 나무’로 변화한 것은 치료 중기에 경험한 지지적 공간이 심리적 자원으로 내면화되었음을 시사한다.
내담자는 ‘섬·숲·사막’이라는 안전한 고립(초기)에서 ‘침입과 동요’(중기)를 거쳐 ‘아파트·공원·졸업식’이라는 공동체적 생활세계(후기)로 이동하였다. 이는 관계를 완전히 회복한 상태라기보다, 관계 속에서도 자기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재조정된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사례는 학교에서 고위험 학생으로 선별된 이후, 심리상담 임상장면으로 연계되어 장기 모래놀이치료가 진행된 경우라는 점에서 학교–지역 자원의 연계 모델을 보여준다. 학교상담실에서의 초기 위기평가와 안전계획, 보호자 협력, 외부 기관 의뢰는 고위험 청소년 사례에서 필수적인 안전망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이는 학교 기반 자살 예방·개입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선행연구와 맥락을 같이 한다(Bae et al., 2013; Cho et al., 2018; Miller, 2025).
다만 단일사례라는 점, 모래놀이치료와 약물치료가 병행되었다는 점, 추수 기간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관찰된 변화를 모래놀이치료만의 효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울·자살사고·자해행동 감소와 투사검사 및 회기 자료의 변화가 동일한 방향으로 수렴했다는 점은, 학교 기반 선별 이후 임상 장면에서의 모래놀이치료가 위기 상황에서 정서조절과 상징화를 촉진하는 치료적 틀로 기능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과
사전–사후 비교에서 우울, 자살사고, 자해행동은 모두 감소 방향을 보였고, 특성불안은 소폭 감소하였다. CES-DC 표준점수는 75점에서 63점으로 감소하여 우울 수준이 임상적으로 의미 있게 낮아졌고, SIQ-JR 표준점수는 69점에서 63점으로 감소하여 자살사고의 빈도와 강도가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성불안을 나타내는 TAIC는 70점에서 69점으로 소폭 감소에 그쳤으나, 전반적인 정서 긴장은 일부 완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1개월 기준 수퍼비전 에피소드 수는 6회에서 0회로 감소하여, 사후 평가 시점에는 자해행동이 보고되지 않았다.
사전 SCT와 K-HTP에서는 고립, 자기비난, 관계적 긴장, 외부 세계에 대한 경계와 안전감의 취약성이 두드러졌다. 집은 바다 위 섬에 고립된 집으로, 나무는 연못가에 홀로 서 있는 버드나무로 그려져, 고립된 자기상과 “현재의 안정이 장기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사후에는 집이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자리한 2층 집으로 재구성되고, 창문에 선 자기상이 등장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현실적 공간과 관계 맺기를 수용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나무 그림 역시 내부가 비어 있던 버드나무에서, 기둥 안에 주방·공부방·도서관이 채워진 “거주 가능한 자기 공간”으로 변하여, 내적 자원의 확장과 자기 통합의 진전이 시사되었다.
동적 가족화에서는, 사전에는 부모와 형제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내담자는 비교적 작게, 약간 떨어진 위치에 그려져 정서적 주변화와 자기 축소 경험을 반영하였다. 사후에는 내담자가 가족의 중앙에 서 있고, 부모와 형제들이 한 장면 안에서 함께 배치되어, 가족 체계 안에서 자기 자리를 회복하고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자기상을 보여주었다.
모래놀이치료 초기에는 고립된 섬·숲·사막, 울타리와 같은 상징이 중심이었으나, 중기에는 침입과 감시, 시간·이동 주제가 더해지고, 후기로 갈수록 아파트 단지, 공원, 골목, 졸업과 입학 등 생활세계와 연결된 상징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상징 변화는 객관검사에서 확인된 우울·자살사고·자해행동 감소, 투사검사에서 관찰된 고립 중심 표현의 완화와 관계·생활세계로의 이동과 방향을 같이한다. 요컨대 본 사례에서는 정량 자료, 투사적 자료, 회기 전개 양상이 모두 정서적 안정화, 자해·자살행동 감소, 생활세계로의 재연결이라는 동일한 변화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타났다.